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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아프리카 이끌 수 있는 새마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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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타기루티마나 레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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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락마을  은타기루티마나 레옹스( NTAKIRUTIMANA  Leonce) 새마을지도자, 저널리스트(2018. 5. 23 ~ 6. 1 부룬디 초청 새마을교육과정)

1970년 한국 정부는 마을에 시멘트와 철근을 나누어주고 퇴비장과 공동 빨래터, 공동 우물 등 마을 내 공동 설비를 정비하도록 했다. 산에는 나무를 가득 심고, 마을 길을 넓히고, 하천과 둑, 우물을 정비했다. 마을은 깨끗해졌고, 쥐도 없어졌다. 한국이큰 걸음을 내딛고, 이제 발전을 눈앞에 맞을 순간을 만난 셈이다.
겨우 40 여 년 만에 한국은 해외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해외 원조를 하는 공여국 으로 탈바꿈했고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이 엄청난 발전의 비결은 다름 아닌 모든 한국인이 손에 손을 잡고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가지고 함께 노력한 결과였다.
부룬디 국민에게 묻고 싶다. 우리도 한국이 이룬 이러한 기적을 겪을 수 있을 까? 우리는 그저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 선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스럽 게도 새마을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서로 돕고 경쟁하며 끌어주는 ‘이키비리(Ikibiri)’ 농촌 정신, 짧은 시간 안에 공공 이익을 위한 시설을 짓는 바로 이 정신이 그것이다. 공동체 개발 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가? 이미 모든 부룬디인의 DNA 속에 있는 이 정신은 함께 도와 잘 사는 마을을 만들자는 새마 을운동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해야 한다는 신념, 하면 된다는 신념, 할 수 있다는 신념”을 통한 혁명가 정신이다. 우리는 “살기 좋은 마을과 살기 좋은 잘 사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의식을 변화시키자, 게으르지 않다고 대답하자, 그리고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존성을 거절하여 우리 마을과 우리나라를 발전시키자.
새마을운동이 아프리카를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기고문 원문>
전쟁국가에서 평화국가로,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분단국가에서 완전한 사회통합국가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야 한다>  새마을운동 정신을 통해 부룬디인이 발견한 한국의 ‘기적’
한국에게 1950년대는 잊을 수 없는 슬픈 시기였다. 세계 2차 대전의 영향과 한국 전쟁을 포함한 긴 역사 동안 외세의 침략을 931번이나 받으며 별이 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한국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무자비한 전쟁 이후에도 가뭄과 홍수로 심각한 기근을 겪었고, 그나마도 얼마 없는 식량은 집집마다 불청객인 쥐떼와 나누어야 했다.
1952년 타임지(The Times)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고, 세계은행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라며 경종을 울렸다. 한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이 시기에 국민 80%가 초가집에 살며 등불을 썼고, 시골에 거주하는 비율이 전체 국민의 70%에 달했다. 심지어 마을 안길은 너무 좁아서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차 한 대도 지날 수 없는 길은 있으나 마나였다. 이 시기의 한국은 다시 말해 유례없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총체적으로 불행한 국가였던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구세주가 나타났는데, 성경 속 예수처럼은 아니었으나 ‘할 수 있다’는 단순한 하나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었다.
1961년 국가재건사업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1966년 마을 주민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하기 시작했고, 1968년 농촌 및 어촌 마을 소득증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들의 노력과 사기를 본격적으로 진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1970년 4월 22일로 돌아가보자.
한국 정부는 마을에 시멘트와 철근을 나누어주고 퇴비장과 공동 빨래터, 공동 우물 등 마을 내 공동 설비를 정비하도록 했다. 산에는 나무를 가득 심고, 마을 길을 넓히고, 하천과 둑, 우물을 정비했다. 마을은 깨끗해졌고, 쥐도 없어졌다. 한국이 큰 걸음을 내딛고, 이제 발전을 눈 앞에 맞을 순간을 만난 셈이다. 겨우 40여년 만에 한국은 해외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해외 원조를 하는 공여국으로 탈바꿈했고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이 엄청난 발전의 비결은 다름 아닌 모든 한국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가지고 함께 노력한 결과였다. 
부룬디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도 한국이 이룬 이러한 기적을 겪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우리 선조들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스럽게도 새마을 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서로 돕고 경쟁하며 끌어주는 ‘이키비리(Ikibiri)’ 농촌 정신, 짧은 시간 안에 공공 이익을 위한 시설을 짓는 바로 이 정신이 그것이다. 
공동체 개발 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가? 이미 모든 부룬디인의 DNA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 정신은 함께 도와 잘 사는 마을을 만들자는 새마을 운동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기적을 만들기까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해외 원조의 노예였다. 수십년간 이어진 원조 이후 케냐 경제학자 제임스 시콰티(James Shikwati)는 “해외원조가 독립 의식과 창의적 정신을 깨트리고, 개혁으로 가는 입구를 막아 경제를 기형화한다”고 말했다.
작가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아프리카 국가에 주는 원조 형태의 지원은 우리 경제를 망친다고 비판하며 “공여국이 주는 원조는 개발도상국의 역량을 망치는 공모자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잠비아 출신의 아프리카 경제학자인 담비사 모요(Dambisa Moyo) 박사는 “아프리카를 위한 원조는 사업이 아니며, 오히려 도와주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전 세계 선진국이 아프리카를 도와주려 하지만 상황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 교수는 “최근 40여년 간 5680억 달러를 사용했는데 인구당 연간 소득은 0%에 머무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아프리카, 그리고 부룬디에게 “해결책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다. 부룬디에게 부족한 것은 천연자원이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가 마을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해야 한다는 신념, 하면 된다는 신념, 할 수 있다는 신념”을 통한 혁명가 정신이다. 우리는 “살기 좋은 마을과 살기 좋은 잘 사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의식을 변화시키자, 게으르지 않다라고 대답하자, 그리고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존성을 거절하여 우리 마을과 우리 나라를 발전시키자.  2007년 케냐 UN회의에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최근 몇 년 간 아프리카는 해외원조에도 불구하고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자발적인 발전 의식과 협력 정신이 부족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새마을 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새마을 운동이 아프리카를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한다. (끝)

2018. 6. 8 새마을신문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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